세계선교
● 제자선교회와의 관계와 선교지로 가기까지
안녕하세요. 먼저 저에 대한 배경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지금은 서울대에 계신 박동열 교수님이 전에 교사로 있으면서 기독교반을 세워 양육했던 중화고등학교 기독교반 출신입니다. 그 때 YDCF(청소년사역)를 통해 DCF와의 연관을 맺었고, 양육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중화고 출신들(김용환 목사, 박학규 선교사 등)이 DC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목회자였습니다. 충남 금산에서 목회를 하셨죠. 그리고 경기도와 서울에서도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를 입학 한 이후, 가족들은 독일 선교사로 다시 떠났습니다. 이때, 저는 혼자 한국에 머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독일에서 선교 활동을 한 지 3년 후에 아버지는 지금의 ‘잠비아’로 가셔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참 복잡하네요. 저의 정체성을 말하면, PK(목회자 자녀), MK(선교사 자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만큼의 힘든 시간들은 솔직히 없었어요. 오히려 ‘힘들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다가오는 분들이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해외에 있을 때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군대생활을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선교사를 하려는 뜻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왠지 바로 신학교를 가서 선교사로 가기에는 좀 부담스러워서 대학 졸업 이후에 ‘견습 선교사’로 잠비아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에 대한 마음과 ‘사역’을 더 굳건히 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후에 한국에서 더 구체적인 진로를 위해 준비할 것들이 있었어요. 정식 선교사로 세워지기 위해 신학교육 등의 여러 과정이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생각과 계획대로만 되지 않더라고요. 신학교에 가는 것도 몇 번 불합격하고, 35살에 신대원을 가게 되고, 이후 가정을 갖고, 전임사역을 하고, 정식 선교사를 위한 훈련을 받는 등의 시간을 가지니 지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긴 시간을 통해 저를 다듬고, 준비시키고, 세우시더라고요.
특별히, 제가 가진 선교의 거창한 계획 같은 것은 아직 없습니다. 단지 이단이 많은 현지의 상황 속에서(정말 많아요), 올바른 복음이 증거되도록 최선을 다해 교회와 학원 사역(RAMAH-NAIOTH Community Christian School)을 섬기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행복해 했던 어린시절의 ‘좋은 기억’을 잠비아의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줄 수 있도록 사역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선교지에 가서 저희 가정이 먼저 잘 살겠습니다’. ‘선교지에서 잘 사는 것’이 저의 선교의 목적이 되었네요.
이찬희/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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